Nánjīng Dōnglù Bùxíngjiē East Nanjing Road
중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걷는 거리다. 하루 평균 170만 명. 서울 지하철 2호선이 하루 120만 명을 태운다. 중국의 인구+여기 인파를 체험(?)해보고 싶으면 저녁나절 한번 걸어보면 안다. 주말까지 끼면 인파에 떠밀려 다니게 된다.
1845년, 영국 조계 당국이 마차가 달리던 작은 길을 넓히면서 ‘파크 레인 花園弄’이라 불렀디기 1965년 난징루로 이름을 바꿨다.이후 이 거리는 한 세기에 걸쳐 중국 상업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절정은 1910~1930년대까지였다.






당시에 상하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였다. 도쿄는 상하이 뒤에 있었다. 그러자 홍콩과 호주를 전전하던 화교 상인들이 상하이로 밀려들었다. 1917년 신시어 Sincere 先施, 1918년 윙온 Wing On 永安. 이어 선선 Sun Sun 新新과 더 선 The Sun 大新이라 불리던 상하이 4대 백화점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네 곳의 백화점은 단순히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라 오락부터 미식, 볼거리가 모두 결합된, 지금으로 치면 스타필드 같은 곳이었다.
당시 윙온 永安백화점은 바로크 양식의 7층 건물이었다. 상하이에 7층짜리 건물이 흔하지 않던 시절. “극동 제1상업가”라는 별칭도 그때 붙었다.
1949년 공산화 이후 4대 백화점은 국유화됐다. 명품 소비의 공간은 국가 배급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상징성은 꺾이지 않았다. 계획경제 시절 상하이 시내에서 쓸 만한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오랫동안 이 일대 뿐이었다. 해외에서 사절이라도 오면 여기서 물건을 구해야했다. 베이징에는 마땅한 게 없었다.
난징루는 개혁개방 이후에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난징루 4㎞중 인민광장에서 와이탄 초입까지 이어지는 동쪽 구간이 1999년 보행가로 전환됐다. 당시 기준으로는 꽤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2000년대 초에 이 곳은 방문한 저자도 세상에 이렇게 긴 보행자 전용도로가 있다는 사실에 놀랬었다.
보행가는 2019년 다시 한 번 확장됐다. 노르웨이 건축사무소 스노헤타 Snøhetta가 설계를 맡아 기존 1,033m였던 보행가를 와이탄 중산동일로, 즉 와이탄까이 아예 쭉 이어 버렸다. 현재 보행가의 총 길이는 1,599m다.





이 거리가 상하이 사람들의 일상 쇼핑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명품 구매는 이미 난징시루나 화이하이루로 넘어간 지 오래다. 지금의 난징동루를 채우는 인파는 대부분 중국 각지에서 상하이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다. 와이탄과 함께 “상하이에 왔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할 코스”로 공식화된 곳이기 때문이다. 상하이 토박이들 사이에서 “시끄럽고 촌스러운 지방 사람들만 넘쳐나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진짜로 상하이 로컬들은 외지에서 손님이 오지 않는한 이 동네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홍콩·호주를 돌던 화교 자본이 상하이로 들어와 “극동 제1상업가”를 만들었고, 그 자본을 국가가 빼앗았으며, 지금은 쓰촨과 헤이룽장에서 올라온 관광객들이 스마트폰을 들이밀고 있다. 거리 하나에 근현대사가 다 들어 있다.
윙온 永安 백화점 건물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바로크 양식 외벽에 코카콜라 광고판이 붙어 있다.
인파가 두렵긴 하지만 그럼에도 저녁나절에 가자. 네온사인이 일제히 켜지는 시각, 이 거리는 낮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한다. 저녁도 이 일대에서 때우면 동선에도 큰 문제가 없다. 사람이 너무 많아 어디로 가든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