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탄위엔 外滩源

와이탄위엔 wài tan yuá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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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와이탄이 20세기의 걸작이라면, 19세기 말 상하이에 가장 먼저 조성된 근대식 거리가 한 블록 뒤에 따로 있다. 이름부터 그렇다. 와이탄의 원류라는 뜻의 와이탄위엔 外滩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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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가치로 치면 와이탄에 밀릴 게 없는 이 일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다. 1949년 중국을 접수한 사회주의자들에게 상하이, 특히 와이탄 일대는 타파해야 할 부르주아의 표본이었다. 건물을 부수지는 않았지만, 1960년대 문화혁명기 홍위병들은 이 거리를 가루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 바람에 우아한 외관의 건물들은 본래 쓰임과 무관하게 공장, 철공소, 급식소로 전락했다.

1980년대 개방 이후 사정이 갈렸다. 강변에 면한(그래서 더 눈에 띄는) 와이탄의 건물들은 금세 복권돼 1930년대의 영화를 되찾았지만, 한 블록 뒤 와이탄위엔은 얼마 전까지도 공장으로 쓰이던 곳투성이였다. 그 가치를 알아챈 건, 공교롭게도 사회주의자들이 그토록 타도하려던 부활한 부르주아지였다. ‘우리가 아는 와이탄 뒤의 진짜 와이탄’이라는 스토리텔링은 완벽했다.

2010년 시작된 개발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18년에 걸친 보수공사 끝에 위엔밍위안루 圆明园路 일대 역사건물들이 단장을 마쳤다. 옛 영국총영사관 부지 다섯 동은 ‘외탄위엔 33’, 위엔밍위안루의 11개 역사건물 무리는 ‘뤄커·외탄위엔 洛克·外滩源’으로 묶인다. 지금 이곳엔 고급 사교 클럽, 미슐랭 레스토랑, 명품숍이 속속 들어서 있다. 와이탄만큼 고풍스럽되 덜 붐비는 덕에 예비 신랑신부의 야외촬영지로도 인기다. 그들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구 영국총영사관 原英国总领事馆

1849년, 그러니까 청나라가 아편전쟁에 서 영국에 패배한 뒤, 난징조약을 맺어 상하이를 조차하기로 한 지 7년 만에 지 어진 상하이 최초의 근대식 건물이다. 전쟁의 승자이자 상하이를 전리품으로 챙긴 영국의 총영사관, 쉽게 말해 총독부 역할을 하던 곳이자 근대 상하이의 출발이 여기에서 시작됐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 건물은 1870년 화재로 전소했고 현재의 건물은 1873년에 다시 지었다. 새로 지었음에도 와이탄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는 타이틀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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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름은 외탄위엔이하오 外滩源壹号. 한동안 딤섬과 애프터눈 티를 내는 레스토랑으로 쓰였지만, 2023년부터는 예술 전시와 연회 공간으로 방향을 틀었다. 평소 일반 공개는 제한적이라 전시 일정을 확인하고 가는 편이 좋다. 옛 영사관저였던 2호 건물은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이 극동 플래그십 스토어로 임대해 쓴다. 스물 일곱 그루의 고목으로 둘러쌓인 널찍한 영국식 정원과 160년 된 외관만으로 발걸음이 아깝지 않다.

유니온 처치 原新天安堂 Union Church

난쑤저우루와 위엔밍위안루가 만나는 자리에 선 1886년의 고딕풍 개신교회다. 와이탄에 건물이 빽빽하지 않던 시절에는 황푸강에서 도 보였기 때문에, 선원들은 교회를 지날 때마다 모자를 벗어 예를 표 했다고. 그러나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이 들어선 뒤의 운명은 기구했다. 2007년까지 램프를 만드는 공장으로 쓰였으니 말이다. 그해 노동자의 실수로 불이 났는데, 공장으로 되짓는 대신 본래 모습으로 복원한 건 진심으로 잘한 일이다.

지금은 와이탄위엔을 가로지르는 위엔밍위안루의 입구 노릇을 하며, 예비 신랑신부의 야외촬영 명소로 떠올랐다. 아직도 예배는 아직 열리지 않아 교회로서의 기능까지 복원한건 아니다. 교회의 외형을 한 비종교 공간인 셈이다.

진광대루 真光大楼 China Baptist Publication Building

1930년에 지은 건물로, 공산화 이전까지 중국 침례회 출판사의 본부였다. ‘진광’이라는 이름도 이곳에서 펴낸 월간지 《진광(真光)》에서 왔다. 설계자는 국제반점과 대광명영화관, 우캉빌딩을 남긴 상하이 근대건축의 거장 라슬로 후데치 邬达克다. 아르데코를 중심으로 표현주의와 고딕 리바이벌 느낌이 함께 읽히는 건물로, 뾰족뾰족한 수직 장식 탓에 밤에 보면 영락없는 『반지의 제왕』의 탑이다. 그래서 개신교 건물인 줄 모르는 이들이 ‘악마성’이라 불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한다.

오랫동안 공사 가림막에 가려 외관조차 보기 어려웠지만, 뤄커·외탄위엔 정비가 끝나며 위엔밍위안루 209호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됐다. 바로 옆 광학대루 广学大楼와 평면이 이어진 쌍둥이 건물이라는 점도 알고 보면 더 흥미롭다. Aesop의 플래그쉽 스토어가 입점해 있다.

란씬 빌딩 兰心大楼 Lanxin Bldg

1867년, 상하이 조계의 영국인 이민자들이 위안밍위안루 모퉁이에 목조 극장 하나를 지었다. 중국 최초의 서양식 극장, 1대 란씬대극장이다. 상하이 사람들은 여기서 공연하는 작품들을 경극과 구분해 ‘서양 잡극’이라 불렀다. 1대 란씬대극장은 1871년 화재로 전소됐다. 2대 극장이 현재자리에 다시 섰고, 반세기 넘게 자리를 지켰다. 1907년에는 중국 최초의 화극 단체 춘양사 春陽社가 이 무대에서 《흑노오천록 黑奴吁天錄》을 초연했다. 중국 현대 연극의 시작점으로 평가받는 공연이다.

란씬대루는 그 2대 극장이 쓰러지기 직전인 1927년, 극장 옆 부지에 들어섰다. 통화양행 通和洋行이 설계하고 업광지산공사 業廣地産公司가 투자한 7층짜리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이름은 사라져가는 극장에서 빌렸다. 완공 이후 HSBC와 매컬리은행이 입주했고, 이후 코닥, 국민정부 외교부 판사처가 차례로 이 건물을 썼다. 극장 이름을 단 건물이 은행·필름 회사·외무부 공관을 거친 셈이다.
지금은 로크·와이탄위안 ROCKBUND 복합 개발 구역의 일부로 복원됐다. 1층의 란씬카페 兰心咖啡는 위안밍위안루에서 가장 유명한 포토스팟 중 하나가 됐다. 위층은 고급 오피스로 쓰인다. 건물이 품은 역사에 비하면 지금의 쓰임새는 조용한 편이다.

씨에진 빌딩 协进大楼 Xiejin Bldg

1920년대 상하이에서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다. 중화민국 지식인 사회의 언어이자, 근대화의 통로였다. 중화전국기독교협진회 中華全國基督教協進會는 그 중심이었고, 이 건물은 그 본부였다. 1922년 상하이에서 세계기독교학생연맹 총회가 열렸을 때, 각국 대표들이 이 일대를 가득 메웠다.

당시 중화민국을 호령하던 장제스 蔣介石는 원래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쑹메이링 宋美齡과 결혼을 원했으나, 쑹 부인이 “기독교인과만 결혼을 허락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장제스는 결국 1930년 세례를 받았다. 그의 개종 소식은 당시 부하들을 경악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총사령관이 결혼을 위해 종교를 바꾼 것이다. 그 총사령관이 믿는 종교의 본산이 이 건물이었으니, 당시 협진회의 권세를 짐작할 만하다.

현재 건물 6·7층에는 8½ Otto e Mezzo Bombana 상하이 지점이 입점해있다. 홍콩에 본점을 둔 이탈리아 파인다이닝 셰프 움베르토 봄바나가 2012년 상하이에 낸 지점으로, 2017년 미슐랭 가이드 상하이 첫 발간부터 지금까지 2스타를 연속 유지하고 있다. ‘화이트 트러플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봄바나 특유의 이탈리안 클래식이 이 집의 아이덴디티다. 가격도 상하이 파인다이닝 최상위권이다. 지갑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면 런치 세트가 현실적인 선택이다.

구 YWCA 회관 女青年会大楼

바로 앞 씨에진 빌딩에서 장제스의 개종 이야기를 했다. 그가 개종을 결심하게 만든 여인 쑹메이링 宋美齡의 이야기는 이 건물에서 이어진다. 미국 웰즐리 칼리지를 졸업하고 귀국한 쑹메이링의 첫 직장이 바로 이 건물에 입주한 중화기독교여청년회 전국협회였다. 장제스를 만나기 전, 그는 이 건물에서 여성 사회 운동의 최전선에 있었다.

건물 자체도 볼 만하다. 1932년 완공된 이 8층짜리 건물은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리진페이 李錦沛의 설계로 지어졌다. 건축비만 백은 40만냥을 쏟아부었다. 조계의 1920~30년대는 서양 건축가들이 판치던 시절이었다. 그 한복판에서 리진페이는 미국에서 배운 아르데코 구조 위에 중국 전통 문양 부조를 얹었다. U자형 평면으로 설계해 채광을 확보하고, 외벽에는 중국 고전 장식을 세밀하게 새겼다. 파격이라기보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조계라는 공간에서 중국인 건축가가 중국의 얼굴을 가진 건물을 당당하게 올린 것이다.

건물은 지금도 중화기독교여청년회 전국협회가 사용하고 있다. 1994년 상하이시 제2차 우수역사건축으로 지정됐다. 위안밍위안루가 보행자 거리로 정비된 이후 외관을 감상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쑹메이링이 출근하던 건물을 지금의 우리가 걸어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역사 산책의 묘미다.

현재는 일본 스페셜티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리구치 토시히데의 커피숍, 호리구치 커피 堀口珈琲가 입점해있다. 여기가 호리구치 커피의 유일한 해외 지점이다보니 커피샵 오픈런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위엔밍위안 아파트 圆明园公寓 Yuanmingyuan Apartment

와이탄위엔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904년에 지어졌다. 1904년이면 와이탄의 상징들이 아직 존재하지 않던 시절.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을거다. 그 유명한 와이탄의 세관 건물이 20년 뒤, HSBC 빌딩은 19년 뒤에 지어진다. 이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 와이탄은 지금과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뾰족한 지붕, 붉은 벽돌등 빅토리아 시대 영국 거리에서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3층짜리 건물이다. 이후에 지어진 와이탄의 건물들이 당시로서는 최첨단인 철근 콘크리트를 지향했지만, 1904년 위엔밍위안 아파트가 지어질때에는 그런 기법조차 없었다.

아마 1920년대쯤 되면 고리타분하다는 말을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 고루함이 빛을 발하는 시대다. 처음부터 복합거주지로 지어졌는데, 당시 거주자는 주로 조계 내 기업 중역급 이상의 외국인 주재원들이었다.

현재는 ROCKBUND 복합 개발 구역의 일부로 복원됐다. 위안밍위안루 보행자 거리를 걷다 이 붉은 벽돌 건물 앞에서 잠깐 발을 멈추는 것으로 충분하다.

📍 와이탄위엔 外滩源 근대 건축물과 예쁜 카페가 모여 있는 록번드 핵심 코스
🕐개방 시간
오픈
🚇가까운 지하철역
난징동루역(2∙10호선)지도로 길찾기 ↗
베스트 방문 시간
05:00 – 08:00
15:00 – 17:00카페 놀이 최적의 시간대
해 질 녘 ~ 저녁 (18:00 – 20:00)건물들에 경관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이 시간대가 가장 화려하고 분위기가 좋다.
📍가까운 볼거리
외백도교도보 5분
황푸 공원∙인민영웅기념탑도보 5분
난징동루 보행가 입구도보 10~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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