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탄의 건물들

'만국건축박람회 萬國建築博覽會'. 황푸강변 1.5㎞를 따라 늘어선 52채의 건물들이다. 고딕, 바로크, 로마네스크, 신고전주의, 아르데코 양식이 한 라인에서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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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건축박람회 萬國建築博覽會’. 황푸강변 1.5㎞를 따라 늘어선 52채의 건물들이다. 고딕, 바로크, 로마네스크, 신고전주의, 아르데코 양식이 한 라인에서 쏟아진다. 아시아에 이만한 밀도의 서양식 건물군은 없다. 상하이가 한때 ’10리 양장 十里洋場’, 동서양이 뒤섞인 국제도시의 상징으로 불렸던 이유가 바로 이 거리에 있다.

1845년 개항 이후 외국 조계지가 형성되고, 1873년 영국 영사관이 들어서면서 와이탄의 건물군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20~30년대다. 상하이가 아시아 최대의 금융·무역 도시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강변을 따라 경쟁하듯 고층 건물이 들어섰다. 때마침 전 세계를 휩쓸던 아르데코 Art Deco 양식도 상하이에 상륙했다.

아르데코라는 말이 낯설다면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떠올려라. 1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발전한 공업 기술과 미술이 결합하며 탄생한 양식이다. 직선과 수직의 반복, 선이 중첩되며 만들어내는 웅장함. 장식은 최소화하되 위용은 극대화했다. 아르테코는 당시 건축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야심찬 미학이었다. 상하이의 아르데코 건물군은 뉴욕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강변을 따라 한꺼번에 늘어선 밀도 면에서는 뉴욕도 흉내 내기 어렵다.

현재까지도 이 건물들은 대부분 현역이다. 은행, 호텔, 명품 매장으로 쓰이며 100년 전과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걸으면서 하나씩 들여다보라. 각각의 건물이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시간이 없다고! 여기서 딱 다섯개의 건물만 본다면?

와이탄 12호 | 와이탄 13호 | 와이탄 20호 | 와이탄 23호 | 포강반점

와이탄 1호 外灘 1號 Asia Building [1916년]

와이탄 산책이 시작되는 곳이다. 1916년 완공 당시 와이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와이탄제일루 外灘第一樓’, 와이탄의 첫 번째 건물이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었다.

바로크 양식 특유의 웅장함에 이오닉 기둥을 더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상단과 하단을 다른 색 벽돌로 마감해 시각적으로 단정하게 구분되는 것도 이 건물만의 특징이다. 원래 영국계 석유회사 로열 더치 셸의 아시아 사무소였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수십 년간 여러 국가기관을 거쳤다.

오랫동안 비공개였으나 최근 들어 완전히 달라졌다. 2019년 번드 원 아트 뮤지엄 Bund One Art Museum이 문을 열었고, 2022년에는 크리스티 경매 상하이 본부가 입주했다. 특히 번드 원 아트 뮤지엄은 2022년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과 장기 파트너십을 맺으며 그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해외 유명 미술관의 소장품을 그대로 들여오는 ‘블록버스터급’ 전시가 주를 이루며, 전시기획과 도슨트 프로그램의 수준이 높아 전문가와 일반 여행자 모두에게 만족도가 높다. 외관만 보고 지나쳤던 건물 안에 이제 들어가 볼 확실한 이유가 생겼다.

번드 원 아트 뮤지엄 ✓개관 10:00~18:00(연중무휴) ✓요금 188元 ~ 218元 (전시별 상이)

와이탄 2호 外灘 2號 Shanghai Club Building [1910년]

와이탄에 늘어선 수십 채의 건물 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외장. 식민지 시대 이 건물의 정체는 구 영국총회(旧英国总会), 즉 상하이에 기반을 둔 영국인 엘리트들의 사교 공간인 상하이 클럽이었다.

당시 이 건물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고 소문난 롱 바 Long Bar가 있었는데, 방문객의 신분과 지위가 확인되야 입장이 가능했다. 중국인과 여성의 출입은 철저히 금지했던 곳으로 당시 상하이의 불평등한 권력 구조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했다.

현재 이 건물은 힐튼의 최상위 브랜드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Waldorf Astoria가 매입해 최고급 부티크 호텔로 재탄생했다. 호텔인 만큼 로비와 1층의 롱 바까지는 투숙객이 아니어도 출입할 수 있다. 구 상하이 클럽 시절의 바 테이블을 복원해두었으니, 과거의 고압적인 분위기를 상상하며 칵테일 한 잔을 즐겨보는 것도 좋은 내부관람 요령이다.

현지인들 사이에서 이 건물의 별명은 여전히 컨더지 빌딩 肯德基大楼이다. 1990년 상하이 최초의 KFC가 이곳에 둥지를 틀었던 탓이다. 1996년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KFC가 떠난 지 30년, 이제 이곳의 임대료는 닭을 팔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가장 서민적인 패스트푸드점이 가장 화려한 식민지 건축물을 점령했던 짧은 기록은, 이제 상하이 노년층의 추억 속에만 남아 있다.

와이탄 3호 外灘 3號 Union Building [1916년]

와이탄에 늘어선 건물들 중 상당수가 건축 설계 사무소 팔머&터너 P&T Group의 작품이다. 바로 옆 홍콩상하이은행 HSBC 본점을 비롯해 와이탄의 스카이라인을 그들이 설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팔머&터너가 상하이에서 처음으로 완성한 건물이 바로 이곳, 와이탄 3호다. 1916년 완공 당시 상하이 최초의 철골 구조 건물이라는 기록을 쓰며 건축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지금의 와이탄 3호를 규정하는 것은 건축사적 의미를 넘어선다. 이 건물은 2004년 리노베이션 이후 Three on the Bund라는 주소를 하나의 럭셔리 브랜드로 만들어 와이탄의 본격적인 상업화를 이끈 선구자다. 와이탄에서 가장 품격 있는 식사를 원한다면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좁혀진다. 건물 전체가 상업 공간인 덕분에 1930년대풍으로 복원된 우아한 내부를 예약 없이 드나들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단, 입구는 와이탄 대로변이 아니라 광둥루(广东路) 방향에 있으니 강변을 걷다가 헤매지 않도록 주의하자.

메르카토 Mercato장 조지의 이탈리안 캐쥬얼 레스토랑. 같은 쉐프의 고급 레스토랑인 장 조지가 미슐렝에서 탈락하며, 어차피 무슐렝(?) 상황에서 차라리 캐쥬얼 레스토랑인 메르카토가 낫다는 입장이 대세
POP와이탄 3호 루프탑에서 영업 중. 바 루즈 폐업 이후 와이탄을 조망할 수 있는 야경 명소로 인기만점
상하이 갤러리오브 아트 Shanghai Gallery of Art중국 현대미술 전문 갤러리. 창밖으로 와이탄과 푸동 전경이 펼쳐진다

와이탄 5호 外灘 5號 Nissin Building [1925년]

얼핏 보면 서양식 건물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풍 외장이 언뜻언뜻 보인다. 1920년대 당시 일본 건축의 최신 유행이 서양 고전 양식 위에 얹혀 있는 독특한 혼종. 1925년 건설 당시 일본의 해운 거물인 닛신기선 日清汽船의 상하이 지점으로, 상하이와 일본을 오가는 항로를 독점하며 황푸강의 물류를 주무르던 곳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상하이 해사국 海事局이 사용하다가, 2006년 와이탄 3호의 성공에 힘입어 상업 건물로 전환됐다. 와이탄 상업화의 두 번째 파도가 밀려온 셈이다. 건물 전체가 개방되어 있어 내부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데, 입구는 와이탄 3호와 마찬가지로 광둥루 广东路 쪽에 있다. 두 건물의 입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구조 덕분에 이 골목은 와이탄에서 가장 미식의 밀도가 높은 곳이 되었다.

한때 이곳의 상징이었던 ‘M on the Bund’는 이제 전설 속으로 사라졌지만, 루스 크리스 스테이크 하우스를 비롯한 하이엔드 레스토랑들은 여전히 이곳을 와이탄의 핵심 미식 기지로 지탱하고 있다.

와이탄 5호에는 현재 이런 곳들이 있다

셩융싱 晟永兴미슐랭 1스타 베이징덕 전문점. 와이탄에서 오리구이를 먹어야 한다면 이곳이 정답이다
황조회 皇朝会고급 광둥 요리 전문점, 본점이 런던에 있는 특이한 집이다. 딤섬과 해산물로 유명하다

와이탄 6호 外灘 6號 [1897년]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건물, 뾰족한 아치와 수직으로 강조된 외벽. 영락없는 고딕 양식의 교회 같지만, 이곳은 신이 아니라 철저히 자본을 숭배하던 장소였다. 1897년 완공된 와이탄 6호, 즉 중국통상은행 대루다. 중국인이 세운 최초의 근대식 은행이 교회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오히려 와이탄답다.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외벽이 석재가 아닌 시멘트다. 와이탄의 건물들이 대개 무거운 돌이나 벽돌로 지어졌을 때, 이 건물은 벽돌 구조 위에 인조석을 입히는 당시 기준 최첨단 건축 기법을 택했다. 고딕의 섬세한 장식을 구현하기 위한 영악하고도 실험적인 선택이었던 셈이다.

이 건물의 배후에는 황푸강의 물류를 독점했던 윤선초상국 轮船招商局이 있었다. 수운을 장악하는 것이 곧 무역과 권력을 거머쥐는 것이었던 시대, 고딕 첨탑 아래로는 매일매일 막대한 자본이 강물처럼 흘러들었다.

외벽만 19세기, 안은 21세기. 와이탄 대부분의 건물이 그렇듯 6호도 시간을 두 겹으로 껴입고 있다. 다만 최근의 거센 경제 한파 탓에 한때 화려했던 레스토랑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거품이 걷힌 상하이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해 묘한 서글픔을 안긴다.

와이탄 7호 外滩7號 Great Northern Telegraphy Company [1901년]

와이탄에서 가장 작은 건물 중 하나지만 건물 자체는 꽤 아름답다. 옥상 좌우에 대칭으로 얹힌 바로크풍 돔 두 개가 이 건물의 정체성을 단박에 설명해준다. 1907년, 덴마크에 본사를 둔 대북전보공사 Great Northern Telegraph Company가 상하이 지점을 열었던 곳이다. 전보라는 신문물이 세계를 연결하던 시대, 이 작은 돔 아래서 수많은 메시지가 빛의 속도로 오갔을 것이다.

이 건물 역시 팔머&터너 P&T 건축 사무소의 작품이다. 지금은 태국 방콕은행 상하이 지점과 태국 총영사관이 입주해 있다. 정문에 붙은 화려한 태국 왕실 문양과 낯선 태국 문자가 덴마크식 건축물과 묘한 불협화음을 내며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북유럽의 차가운 통신 기술이 머물던 자리에 들어선 열대 국가의 자본과 행정력. 어느 나라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나라의 것이기도 한, 와이탄의 진정한 무국적성을 이 작은 건물이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다.

와이탄 9호 外灘 9號 轮船招商局总局[1901년]

와이탄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품은 건물 중 하나다. 중국 최초의 증기선 회사인 윤선초상국 輪船招商局 본사가 여기에 있었다. 근대 중국이 스스로 만들어낸 해운 자본의 상징이 황푸강 변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은, 당시의 와이탄 전역이 서양 열강의 무대만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1901년 완공된 건물 자체는 규모가 작다. 하지만 섬세한 콜로네이드 기법으로 쌓아 올린 회랑이 단정하고 아름다워서, 한때 상하이에서 가장 우아한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지금은 윤선초상국의 후신인 초상국 그룹이 입주해 역사적 맥락을 잇고 있으며, 1층에는 동양적 미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타이완계 명품 브랜드 샤찌 첸Shiatzy Chen이 입점해 있다. 중국 자본의 자긍심이 서린 자리에 중화권의 하이엔드 패션이 들어선 셈이다. 와이탄의 변신은 이런 식으로 과거와 현재의 연결 고리를 조용히 증명해낸다.

와이탄 12호 外灘12號 HSBC Building [1923년]

와이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이다. 1923년 완공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육중한 기둥들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한때 수에즈 운하와 베링해협 사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는데, 지금도 그 말이 납득될 만큼 묵직하고 단정하다.

건물의 원래 주인은 홍콩상하이은행 HSBC이다. 1900년대 초반, 홍콩 본점보다 더 거대한 건물을 상하이에 올렸다는 사실은 당시 아시아 금융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정면을 지키는 두 쌍의 청동 사자상은 HSBC의 상징이다. 거리에 놓인 것은 정교한 복제품이지만, 그 위용만큼은 여전하다.

현재는 푸동발전은행 SPD Bank이 사용하고 있다. 로비 돔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바티칸을 연상케 하는 눈부신 모자이크 벽화로 가득하다. 기둥과 돔 사이 팔각면에는 당시 HSBC의 주요 지점이 있던 세계 8대 도시가 르네상스풍으로 그려져 있다. 도쿄, 캘커타, 방콕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상하이의 위상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그 시절 상하이가 어떤 세계의 중심이었는지, 벽화 하나가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오랫동안 비공개였던 이곳은 최근 ‘건축 읽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내부가 개방되었다.

‘건축 읽기’ 프로그램 예약 및 참가 방법

1.위챗 Wechat 앱을 깔고 앱내 검색창에서 ‘黄浦最上海 Huangpu the most Shanghai’ 또는 ‘建筑可阅读 Architectural Reading를 검색하자.

2.서비스 메뉴 중 ‘건축 예약 建筑预约’ 으로 들어가 ‘上海浦东发展银行’을 선택한다.

3.방문 날짜와 시간을 선택한 후, 이름과 연락처, 신분증 번호를 입력합니다. 외국인 여행자의 경우 여권 번호를 입력해야 합니다. 예약이 확정되면 QR코드를 발급받는다. QR코드를 스마트폰에 저장해두자.

4.관람 가능 시간 실제 은행 업무와 혼선을 피하기 위해 주로 평일 점심시간인 11:30 ~ 13:30 사이에만 외부 관람객을 위한 공간이 제한적으로 개방된다.

와이탄 대로변의 웅장한 정문은 실제 은행 업무용이다. 관람객 전용 입구는 건물 측면인 푸저우로 福州路 36호 쪽에 별도로 마련되어 있으니 강변 도로에서 한 블록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권은 반드시 지참하자.

와이탄 13호 外灘13號 Custom House [1927년]

건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세관 건물로 쓰이고 있다. 와이탄에서 원래 용도를 지금까지 유지하는 건물은 여기 빼고는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높이 솟은 시계탑이 건물의 정체성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런던 빅벤,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시계와 함께 세계 3대 시계탑으로 손꼽힌다.

시계탑의 종소리는 지금도 매 시각 울리는데, 시대의 파고에 따라 그 선율이 바뀌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1928년 처음 울릴 때는 영국 색채가 완연한 웨스트민스터 차임스 Westminster Chimes였으나, 1966년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마오쩌둥 찬가인 동방홍 東方紅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다 1986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방문을 맞아 다시 영국식 차임으로 돌아갔는데, 1997년 홍콩 반환을 기점으로 제국주의 산물이라는 비판이 일자 한동안 멜로디 없이 타종만 하기도 했다. 현재 와이탄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다시 동방홍이다. 2003년 정식 복원된 이후, 특히 애국주의 정신이 고취된 2010년대 이후부터는 이 선율이 상하이의 공기를 지배하고 있다. 중국 자본주의의 극치인 와이탄에서 울려 퍼지는 마오쩌둥 혁명 찬가라니, 그 묘한 이질감이 이곳의 진짜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뭐든 다 알고싶은 사람을 위해 마지막으로 동방홍의 가사와 뜻을 적어둔다.

东方红,太阳升,

中国出了个毛泽东。

他为人民谋幸福,

他是人民大救星!

동방이 붉어지며 태양이 떠오르니,

중국에 마오쩌둥이 나타났네.

그는 인민의 행복을 도모하네

그는 인민의 위대한 구세주일세!.

와이탄 14호 外灘14號 Bank of Communication Building [1940년]

와이탄에서 가장 늦게 완성된 건물이다. 1940년 착공했으나 전쟁이 발목을 잡았다. 일본군 점령과 전후 혼란을 건너뛰고 나서 1948년 10월에야 겨우 준공됐다.

주변 건물들이 저마다 돔과 기둥으로 화려한 장식을 겨루는 와중에, 이 건물은 군더더기 없이 수직 선을 강조한 아르데코 양식으로 서 있다. 헝가리 건축가 C.H. 곤다가 설계한 이 단순함은 레고를 쌓아 올린 듯한 단정함을 자아낸다. 전쟁과 경제난이 과잉을 허락하지 않았던 시대적 배경이, 오히려 지금 보아도 세련된 현대적 미감을 완성한 셈이다.

이 건물은 교통은행 Bank of Communications의 본사로 지어졌다. 와이탄을 지배하던 서구 자본들 사이에서 중국 자본이 마지막으로 세운 자부심의 상징이기도 했다. 1951년부터 상하이시 총공회가 건물을 사용하고 있어 내부를 속속들이 둘러보기는 어렵다. 아쉬운 대로 외관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와이탄 건축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기에 충분하다. 아르데코의 간결한 선 뒤로 숨겨진 격동의 세월이, 막내 건물의 어깨 위에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다.

와이탄 15호 外灘15號 Russo Chinese Bank Building [1902년]

와이탄 건물 가운데 이 자리만큼 파란만장한 이력을 가진 곳도 드물다. 제정 러시아와 청나라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화아도승은행 華俄道勝銀行(일명 로청은행)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중외 합자 은행이었다. 1902년 독일 건축가 하인리히 베커의 설계로 완공됐으며,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유약 타일 외벽과 엘리베이터, 최신식 위생 설비를 갖춰 상하이 건축의 첨단을 달렸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의 파고 속에 은행은 표류하기 시작했고, 1926년 결국 파산의 길을 걸었다. 이후 중화민국 중앙은행 사옥으로 쓰이며 중국 금융의 정점을 지켰고, 현재는 중국외환거래센터 CFETS가 들어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국가의 핵심 금융 보안 시설인 탓에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다는 점이 여행자들에겐 못내 아쉽지만, 겉면을 감싼 백색 타일의 은은한 광택만은 100년 전 상하이가 꿈꿨던 화려한 근대를 여전히 웅변하고 있다.

와이탄 16호 外灘16號 Bank of Taiwan [1924년]

와이탄의 다른 건물들이 영국·프랑스·미국 자본의 화려한 흔적이라면, 이 건물에는 구 일본제국의 발자국이 진하게 서려 있다. 타이완 은행 臺灣銀行은 1895년 청일전쟁 이후 대만이 일본령이 된 직후 설립된 식민지 경영의 핵심 금융 창구였다. 1911년 상하이에 지점을 냈고, 1924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건물은 국민당 정부에 의해 적산 敵産으로 몰수되었다. 지금은 중국의 민간 상업은행인 중국초상은행 招商銀行 와이탄 지점이 영업 중이다.

건물 외관은 거대한 그리스 신전을 빼닮았다. 하지만 순수한 서양 고전주의라기보다, 일본이 소화해낸 서양 건축 느낌이다. 1·2층을 관통하며 정면을 지탱하는 굵은 이오니아식 기둥 네 개는 유럽에서 건너온 양식이지만, 전체적인 비례와 장식을 배제한 간결한 처리 방식에서는 일본 금융 자본의 엄격한 권위가 느껴진다. 현재 영업 중인 은행이므로 환전 핑계로 슬쩍 들어가볼 수 있다.

와이탄 17호 外灘17號 North China Daily News Building [1921년]

원래 이 터는 1850년 창간된 북화첩보 北華捷報, 훗날 자림서보 字林西報라고 이름을 바꾼 중국 최초의 영자 신문사가 있던 곳이다. 1921년 낡은 건물을 헐고 새로 올린 건물이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이다. 참고로 1924년 완공 당시 와이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였다고. 지금이야 10층, 40.2m까지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신문사만 이 건물을 썼던 것은 아니다. 창업 초기의 미국의 보험사인 AIA가 임차인으로 들어와 있었다. 중일 전쟁이 발발하고 상하이가 일본에 떨어지자 이 건물은 일본계 신문사 타이리쿠 신포 大陸新報가 사용했다. 와이탄의 건물들은 대부분 건생(?)이 무척 기구한데,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오면서 신문사는 폐간됐다. 무려 101년 만이었다. 붉은 깃발이 중국을 휩쓸던 시절에는 상하이 시 정부의 부동산 관리국으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도 AIA 간판이 눈에 띄는데, 1996년 중국으로 들어온 AIA가 다시 와이탄 17호로 입점했기 때문이다. 반세기만의 귀향이었다.

내부는 원칙적으로는 비공개지만 환전을 핑계로 1층의 은행으로 쓰이는 공간은 구경할 수 있다. 바닥은 흰 대리석, 벽면은 검은 대리석에 금색 모자이크를 박아 넣었다. 외벽 3~7층 사이에는 르네상스풍 부조가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저자도 보지 못했다. 입구 양쪽을 지키던 이탈리아 조각가의 여신상 두 기는 문화대혁명 때 파괴됐다. 그 자리는 지금도 비어 있다.

와이탄 18호 外灘18號 Chartered Bank Building [1923년]

와이탄 건물들이 대부분 은행으로 출발했는데 와이탄 18호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은행 건물중 하나다. 원래 주인은 인도·호주·중국 특허은행, 중국에서는 맥가리 은행 麥加利銀行으로 불렸는데, 오늘날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의 전신이다. 1892년 이 자리를 매입하고 1923년 현재의 건물을 올렸다. 이후 1955년 은행이 철수할 때까지 상하이 금융의 한 축을 담당했다.

건물 외관은 단단하고 간결하다. 정면을 받치는 그리스 신전 느낌의 거대한 기둥이 건물 전체의 무게를 잡아준다. 이 덕분에 와이탄 건물군 가운데 규모는 작지만 비례감이 좋은 편에 속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베네치아에서 공수한 금박 타일 벽면이 로비를 감싸고 있다. 겉에서 짐작하기 어려운 내부다.

고급 복합 공간으로 재개장한 이후 와이탄의 미식 지형도를 이끌어온 건물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 파인다이닝 시장의 부침과 거품 붕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무대가 되었다. 한때 1층과 3층을 호령하며 이곳의 상징이었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라뜰리에 드 조엘 로부숑과 베이커리 카페 살롱 드 테는 2023년 완전히 철수했다.

그 빈자리인 3층에 2024년 초 파리의 미슐랭 3스타 셰프 프레데릭 안톤이 자신의 이름을 딴 18 by Frédéric Anton을 야심 차게 열었으나, 불과 반년 만인 8월에 돌연 폐업했다. 이 사건은 상하이 최고급 외식 시장의 씁쓸한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태로 현지 언론을 장식했다. 현재 3층의 메인 파인다이닝 공간은 다시 공백 상태이며, 4층의 하카산Hakkasan, 7층의 상하이 대표 루프탑 바 루즈 Bar Rouge 등 전설적인 공간들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은 6층의 폴 파이레 셰프가 이끄는 미스터 앤 미세스 번드 Mr & Mrs Bund와 5층의 일식 전문점 긴자 오노데라 Ginza Onodera 정도가 과거의 영광과 와이탄 18호의 명맥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와이탄 19호 外灘19號 Palace Hotel [1906년]

붉은 벽돌과 흰 석재가 띠를 이룬 르네상스 양식 외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와이탄의 다른 건물들이 대부분 웅장한 신고전주의나 세련된 아르데코를 향해 달려갈 때, 이 건물은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지금 건물 이전에는 1850년대에 지어진 센트럴 호텔이라는 전신이 있었다. 이후 팰리스 호텔 Palace Hotel로 개명하고 새 건물을 올린 뒤, 당시 난징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바로 옆의 화평반점 북쪽 건물(사순 하우스)이 들어선 것은 1929년의 일로, 그전까지 팰리스 호텔은 와이탄의 모든 주요 행사를 도맡는 주인공이었다. 1911년 신해혁명 직후, 쑨원 孫文은 임시 대총통 취임식을 위해 난징으로 향하던 길에 상하이에 들러 이곳에서 혁명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다. 취임식은 난징에서 열렸지만, 그 벅찬 기쁨의 무대는 팰리스 호텔이었다.

1964년에는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 周恩來 프랑스 전 총리 에드가르 포르와 회담을 나눴고, 며칠 후 중국과 프랑스의 공식 수교가 선언됐다. 미 대통령 빌 클린턴 역시 상하이 방문 시 이 건물을 거쳐 간 인물 중 하나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화평반점의 부속 건물로 흡수되며 화평반점 남관이라 불리던 이곳은, 2011년 스와치 그룹이 인수해 스와치 아트 피스 호텔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예술가들이 머물며 작업하는 창의적인 공간을 꿈꿨다는데, 어지간한 자산을 가진 예술가가 아니면 작업은 꿈도 못꿀 수준의 고가격대를 자랑한다. 내부는 투숙객 전용이지만, 스와치 특유의 현대적 감각과 건물의 오랜 결이 뒤섞인 로비만으로도 잠시 발을 들여놓을 이유는 충분하다.

와이탄 20호 화평반점 外滩 20號 和平饭店

와이탄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을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화평반점 Peace Hotel을 손꼽는다. 건물 꼭대기를 장식한 구리 피라미드 지붕,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짙은 녹청색으로 변한 그 지붕은 상하이의 스카이라인 속에서 이 건물을 단숨에 식별해내는 이정표가 된다.

이 건물의 건립자는 이라크 출신 영국 유대인이자, 아편 무역을 기반으로 상하이에 거대한 금융 제국을 건설한 빅터 사순 Victor Sassoon이다. 1926년 착공해 1929년 완공된 이 건물은 당시 상하이에 몰아친 아르데코 Art Deco 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설계를 맡은 팔머 앤 터너 P&T 사무소는 이탈리아산 대리석 바닥, 프랑스의 예술가 랄리크 Lalique가 제작한 유리 패널, 그리고 각기 다른 나라의 미감을 살린 ‘9개국 스위트룸’을 통해 이곳을 ‘극동 최고의 호텔’ 반열에 올렸다. 사순 본인은 10층 전체를 펜트하우스로 꾸며 거주했는데, 창밖으로 번영하는 자신의 제국과 직원들을 내려다보았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캐세이 호텔 Cathay Hotel 시절 이곳을 거쳐 간 이름들은 근대사 그 자체다. 찰리 채플린, 버나드 쇼,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여기 머물렀다. 특히 영국의 극작가 노엘 카워드는 독감으로 누워있던 나흘 동안 이곳에서 불후의 명작인 희곡 《프라이빗 라이브스 Private Lives》를 집필했다.

화려했던 제국의 역사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마침표를 찍었다. 건물은 국유화되었고, 1956년 화평빈관 和賓館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사순의 사치스러운 제국이 하룻밤 사이에 인민의 공간으로 뒤바뀐 셈이다.

현재 소유권은 상하이 최대 호텔 그룹인 진장 錦江이 갖고 있으며, 2010년부터 캐나다계 페어몬트 그룹이 운영을 맡아 페어몬트 피스 호텔로 불려왔다. 현재는 다시 운영사가 바뀔 예정인데, 리노베이션을 거쳐 2027년, 래플스 피스 호텔 상하이 Raffles Peace Hotel Shanghai로의 전격적인 리브랜딩이 예정되어 있다. 로비와 1층 홀은 투숙객이 아니어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 사순의 흔적을 찾는 개별 여행자와 깃발을 든 단체 관광객이 묘하게 뒤섞이는 풍경을 자아낸다. 조용한 관람을 원한다면 단체 여행객이 몰려들기 전, 아침 일찍 로비의 팔각형 돔 아래 서보는 것을 권한다.

와이탄 23호 중국은행 外滩23號 中国银行

와이탄의 다른 건물들이 서구 자본의 위용을 자랑할 때, 이 건물만은 결이 다르다. 와이탄에서 유일하게 중국인이 설계에 참여했고, 중국 전통 양식을 정면에 내건 주인공이다.

건물을 짓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원래 계획은 18층 규모로 와이탄에서 가장 높게 솟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바로 옆 사순 빌딩(현 화평반점)의 주인인 빅터 사순이 제동을 걸었다. 자기 건물보다 높게 지어서는 안 된다는 압박이었다. 당시 조계지의 서슬 퍼런 현실 앞에서 중국은행은 결국 뜻을 꺾고 높이를 15층으로 낮춰야 했다. 화평반점의 녹색 지붕 끝보다 아주 약간 낮게 완성된 건물 높이에는 당시 중국 자본이 감내해야 했던 굴욕이 서려 있다. 1936년 착공 후 중일전쟁으로 중단됐던 공사는 전쟁이 끝난 1946년에야 비로소 마무리됐다.

건물의 외형은 와이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다. 수직 선조를 강조한 전형적인 아르데코 구조 위에 암녹색 유리기와를 얹어 중국식 지붕을 완성했다. 각 층 창틀 양옆에는 재물을 상징하는 돈 모양 무늬가 정교하게 뚫려 있어 이곳이 은행임을 조용히 웅변한다. 입구 상단에는 공자의 행적을, 영업홀 천장에는 신선들이 바다를 건너는 팔선과해八仙過海를 새겨 넣어 서양식 뼈대에 중국의 살을 입혔다.

마지막으로 입구 양쪽을 지키는 사자상을 놓치지 말자. 맞은편 와이탄 12호(현 푸동발전은행) 앞 HSBC 사자와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한쪽이 해부학적으로 완벽하게 묘사된 사실주의적 서양 사자라면, 이곳의 사자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중국 전통 해태 모양의 사자다. 같은 수호신을 두고도 동양과 서양이 품었던 상상력의 경계가 이 두 마리 짐승의 표정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와이탄 24호 外灘 24號 Yokohama Specie Building [1920년]

와이탄 건물군에서 규모로는 중간 이하다. 하지만 2층에서 5층까지 건물 높이의 절반을 관통하는 거대한 이오니아식 기둥 한 쌍이 시선을 압도한다. 일종의 의도적인 과장인데, 그 덕에 실제로 작은 이 건물은, 그리 작아보이진 않는다.

원래는 일본 요코하마 정금은행 橫濱正金銀行 상하이 지점이었다. 1893년 상하이에 지점을 낸 뒤 청일전쟁 승리를 발판 삼아 급속히 세를 불렸다. 대중국 전쟁 배상금 처리와 차관 공여의 창구였다. 1923년 이 자리의 구 건물을 사들여 현재의 건물로 새로 올렸다. 설계는 영국 팔머앤터너에 맡겼다. 당시 와이탄에서 권위 있는 건물을 짓고 싶다면 팔머앤터너에 의뢰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외벽은 화강석으로 마감했다. 철저히 유럽 고전주의를 지향하되, 외벽 곳곳에 사무라이 武士와 보살 菩薩 부조를 새겨 넣어 일본색을 남겼다. 안으로 들어서면 바실리카 형식의 영업홀이 펼쳐진다. 천장이 높고 기둥 열이 좌우로 늘어선 구조다.

현재는 중국공상은행 ICBC 지점으로 쓰인다. 은행 영업점이므로 로비까지는 들어갈 수 있다.

와이탄 26호 外灘 26號 Yangtze Insurance Building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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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계 보험회사인 양쯔 재해보험공사 揚子水火保險公司가 지은 건물이다. 설계는 이번에도 팔머앤터너, 1920년 완공됐다.

저층부는 아치와 장식이 화려하고, 중간층은 직선 위주로 절제돼 있다. 6층에는 이오니아식 쌍기둥 회랑이 들어서고, 그 위를 망사르 지붕이 덮는다. 꺾인 경사면이 두 단으로 나뉘는 프랑스 바로크 고전주의 특유의 지붕 형식이다. 한 건물 안에서 양식이 층마다 달라지는 구조를 건축에서는 절충주의라 부른다. 통일감은 없지만 지루하지 않다.

지금은 중국농업은행 프라이빗 뱅킹 총본부로 쓰인다. 고액 자산가 전용 시설이다. 이전 항목들처럼 은행이니까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 외관 감상으로 만족하자.

와이탄 27호 外灘 28號 Jardine Matheson Building [1920년]

와이탄의 건물들이 저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자본의 상징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와이탄 27호는 유독 그 자본들 위에 군림했던 쪽이다. 바로 자딘그룹 怡和洋行. 아편·무역·장강 해운·방직·군수까지 손을 뻗었던 영국 최대 무역상사로 별칭은 양행지왕 洋行之王, 상하이 개항과 동시에 진출해 100년 가까이 공동조계를 사실상 좌지우지했던 실세중 실제였다. 1843년 상하이에 발을 들인 뒤 이 자리를 네 번 허물고 다시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1920년 착공해 1922년 완공된 네 번째 건물이다.

외관은 영국 문예부흥식이다. 3층에서 5층을 관통하는 코린트식 기둥 네 개가 정면을 받치고 있다. 많은 여행안내서들이 그런 이유로 ‘그리스 신전풍’이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정확히는 코린트 오더다. 기둥 머리의 아칸서스 잎 장식만 봐도 도리아나 이오니아보다 훨씬 화려하다는걸 알 수 있다. 1층과 2층은 거친 화강석으로 마감해 묵직한 기단감을 준다.

루즈벨트 가문 연관 투자회사가 인수한 뒤 하우스 오브 루즈벨트 House of Roosevelt로 운영 중이다. 현재 1층에는 롤렉스 플래그십 스토어가, 2층과 8층에는 레스토랑이, 3층에는 프라이빗 클럽이 자리잡고 있다. 9층은 황푸강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바로 아시아 최대 와인 셀러도 이 건물 안에 있다. 와이탄 18호와 함께 상하이 최고급 복합 공간으로 꼽히지만, 일반 여행자가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롤렉스 매장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와이탄 28호 外灘 28號 Glen Line Building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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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독일 상사 젠첸양행 禪臣洋行이 매입해 사옥을 지었다. 그러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조계 내 독일 재산은 일괄 몰수됐다. 이 자리를 낚아챈 것은 영국 이태怡泰 Ewo Tai였다. 이태는 일본·홍콩·싱가포르·뉴욕·런던 항로를 거느린 해운 회사였는데, 영국의 글렌 선사 Glen Line로부터 중국 대리권을 따낸 뒤 회사 이름 앞에 글렌이라는 이름을 함께 얹었다. 건물 이름이 글렌라인 빌딩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설계는 팔머앤터너, 1922년 완공됐다. 1·2층 화강석 외벽이 두껍고 묵직한 인상을 주고, 3~5층에는 볼록창과 발코니가 들어섰다. 7층 중앙 탑루가 건물의 윤곽을 마무리한다. 신고전주의 기조의 절충주의 양식이다. 내부는 철근 콘크리트 프레임 구조로 지어졌다.

건물의 우여곡절을 여기서 끝나지 않아, 1945년 패전 후 일본이 물러난 자리에는 미국 영사관이 들어왔다. 1951년부터는 상하이 인민방송국 上海人民廣播電臺이 입주해 수십 년을 썼다. ‘방송국 건물’이라는 별칭도 그때 생겼다. 지금은 중국의 금융 결제 인프라를 담당하는 상하이청산소 上海清算所가 사용 중이다. 아편 무역의 땅을 독일이 사고, 전쟁으로 영국에 넘어가고, 혁명이 인민에게 넘기고, 지금은 위안화 결제 시스템이 들어앉았다. 와이탄의 어느 건물보다 주인이 많이 바뀐 자리다.

와이탄 29호 外灘 28號 Bank de indochina [1914년]

와이탄 33개 건물 가운데 순수하게 프랑스 자본으로 지어진 건물은 이것 하나뿐이다. 동방휘리은행 東方匯理銀行 — Banque de l’Indochine의 상하이 지점이다. 1899년 상하이에 진출했다.

건물은 3층짜리로 양옆으로 7층, 8층 건물들이 늘어선 와이탄에서 이 건물만 홀로 납작하다. 그러나 막상 안으로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층고가 7.3m로 와이탄 전체에서 평균 층고가 가장 높은 건물이다. 쉽게 말해 외관만 3층이지 속은 거대하다. 전형적인 프랑스 고전주의 양식 건물로 중단부에 이오니아식 열주가 늘어서고 입구에만 바로크풍 장식이 더해졌다.

태평양전쟁 발발 후 와이탄의 영국·미국계 건물들이 일본군에 속속 접수될 때, 동방휘리은행은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바로 나치에 의해 점령한 프랑스 비시정부가 일본과 협력 관계였기 때문이다.(일본이 상하이를 점령했을때 이미 프랑스는 나찌 치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후인 1955년 자진 영업 정지와 함께 건물은 몰수됐고, 공안국 교통처를 거쳐 지금은 중국광대은행 外灘지점이 들어서 있다. 은행이다보니 로비까지는 출입할 수 있다.

이런 역사로 인해 와이탄의 건물중 유독 프랑스인의 시선은 와이탄 29호로 이어진다.

와이탄 32호 外灘 32號 The Peninsula Shanghai [2009년]

페닌슐라 상하이는 와이탄에서 수십 년 만에 처음 새로 지어진 건물이다. 정확히는 1949년 이후 60년 만의 신축이다.

이 자리에는 사연이 있다. 1849년 지어진 영국 영사관 부지의 일부였는데, 홍콩 카도리 가문이 최고급 호텔을 운영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본토를 떠났다. 그 가문이 반세기 만에 돌아와 지은 건물이 바로 여기다. 복귀 선언이 2004년, 착공이 2006년, 개업이 2009년 10월이었다.

설계는 미국 BBG 건축회사가 맡았다. 아르데코 양식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와이탄 건물군의 주류 양식이 1920~30년대 아르데코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이 건물이 신축인지 구건물인지 쉽게 분간되지 않는다. 외벽 화강석도 와이탄의 다른 역사 건물들과 같은 채석장에서 가져왔다. 조화를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다. 15층, L자형 구조로 동쪽은 와이탄, 남쪽은 베이징로, 북쪽은 구 영국 영사관 정원을 끼고 있다. 황푸강·외탄·푸동·영사관 정원의 전망을 모두 확보한 환상적인 위치다.

내부도 기대이상이다. 1·2층에는 7,000㎡ 규모의 쇼핑 아케이드가 들어서 있다. 25개의 럭셔리 브랜드 플래그쉽 매장이 모두 여기에 모여있다. 15층 꼭대기의 Sir Elly’s 레스토랑은 황푸강 전망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로비옆에 있는 두 개의 중식당은 1930년대 상하이 부호 저택에서 영감을 받은 인테리어로 꾸며졌다. 포브스 트래블 가이드 5성 수상, 각국 정상 영빈 이력도 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상당하다.

비투숙객은 1층 쇼핑 갤러리와 로비 라운지까지 들어갈 수 있다. 건물만의 매력을 보조가 한다면 외관만으로도 충붕할지 모른다. 역사 건물들 사이에서 역사인척 서 있는 신축 건물. 와이탄에서 그것만으로도 이 건물은 충분히 볼 만하다.

포강반점 浦江飯店 Astor House Hotel [1907년]

상하이 최초의 호텔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이 건물의 무게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 영국 상인 리차드가 1846년, 그러니까 상하이아 개항한지 3년만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이름은 예사반점 礼查飯店이었다. 1907년 대규모 확장 공사를 거쳐 지금의 영국 신고전주의 바로크 양식으로 완성됐다.

이 건물에서 시작된 것들의 목록은 길다. 중국 최초의 전등이 이곳에서 켜졌다(1882년). 중국 최초의 전화가 이곳에서 개통됐다(1901년). 상하이 최초의 사교 댄스 파티가 이곳에서 열렸다(1897년). 중국 최초의 반유성 노천 영화가 이곳에서 상영됐다(1908년). 포강반점은 당시 최첨단 기술이 중국 본토에 처음 발을 들이는 창구였다.

투숙객 명단도 예사롭지 않다. 아인슈타인이 1922년 일본으로 향하는 길에 이곳에 머물렀고, 버트런드 러셀, 찰리 채플린, 전 미국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 《서행만기》의 저자 에드거 스노 부부도 이 복도를 걸었다. 한때 이 건물을 “살 수 있는 박물관”이라 불렀던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 건물의 가장 마지막 ‘최초’는 90년대까지 이어진다. 1990년 12월 19일, 호텔 내 공작청 孔雀廳에서 상하이 증권거래소가 개업했다. 중국 대륙 최초의 증권거래소였다. 전기·전화·무도회에 이어 주식시장까지, 이 한 건물이 근대 중국의 신문물 도입사를 통째로 끌어안은 셈이다.

2018년 1월 1일 호텔은 어떻게든 운영되던 호텔은 문을 닫았다. 같은 해 12월, 건물은 중국증권박물관 中國證券博物館으로 전환됐다. 화·수·목·금·토·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투숙하는 것도 기념이 되겠으나. 관람 목적이라면 지금이 더 낫다고 볼 수도 있다. 한때 이 호텔이 그리 비싸지 않던 시절에도 돈 아끼겠다며 취재만 강행했던 나는 조금 원통하다.

상하이대하 上海大廈 Broadway Mansions [1934년]

외백대교를 건너 쑤저우허가 황푸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이 건물이 서 있다. 와이탄의 끝자락이다. 멀리서 보면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납작하게 눌러놓은 것 같다.

설계는 영국 건축가 브라이트 프레이저 Bright Fraser. 투자자는 빅터 사순이 통제하던 업광지산공사 業廣地産公司다. 와이탄 20호, 오늘날의 피스호텔을 지은 그 사순이다. 층수는 22층, 높이 76.7미터. 건설당시 상하이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1937년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하면서 건물은 일본 군·정·외교 인사들의 숙소로 쓰였다. 1939년 일본 자본에 매각됐고, 1945년 2차대전 종전이후 국민당정부가 접수해 제7초대소로 사용했다. 1951년에야 지금의 이름인 상하이대하로 바뀌었다. 현재는 5성 호텔로 운영 중이다.

건물 안에는 이른바 사보 四寶가 남아 있다. 1932년 영국에서 수입한 그랜드 피아노, 1934년 영국산 스누커 당구대, 같은 해부터 운행을 시작한 오티스 수동 엘리베이터(이건 아직도 현역이다.), 1917년 미국 빅터사의 캐비닛 유성기. 90년 전 물건들이 아직 건물 안에 있다. 개업 이후 70여 년간 100명에 가까운 각국 정상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그 이름들 중에는 북한의 김일성, 프랑스 대통령 퐁피두, 일본 총리 고이즈미도 있다.

18층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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