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탄과 난징동루 外灘∙南京東路

아르데코 Art Deco 풍의 건축물이 한데 모인 황푸강 강변. 선선한, 때로는 무지막지하게 습한 강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내가 딛고 있는 곳이 20세기의 어느 한 지점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밀려온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 강 건너를 바라보는 순간 착각은 깨진다. 강 건너 푸동 浦東에는 유리와 철골로 뒤덮인 미래도시가 버티고 서 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 150년의 시차. 와이탄은 그 시차를 동시에 품은 장소다.

아르데코 Art Deco 풍의 건축물이 한데 모인 황푸강 강변. 선선한, 때로는 무지막지하게 습한 강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내가 딛고 있는 곳이 20세기의 어느 한 지점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밀려온다. 하지만 시선을 돌려 강 건너를 바라보는 순간 착각은 깨진다. 강 건너 푸동 浦東에는 유리와 철골로 뒤덮인 미래도시가 버티고 서 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 150년의 시차. 와이탄은 그 시차를 동시에 품은 장소다.

1842년 난징조약 이후 영국·프랑스·미국 등 열강이 앞다퉈 이 강변에 은행과 무역회사를 세웠다. 와이탄의 건물들은 그 시절의 유산이다. 20세기 초반, 이 강변은 서구화된 아시아 도시의 모범이자 이상적인 미래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같은 시기 와이탄을 보고 인간의 욕망만이 꿈틀대는 마도 魔都라며 경원했다. 그 시절 이곳에는 빈부와 인종 사이의 차별이 적나라 했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와이탄은 언제나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오늘날 강 너머 푸동의 스카이라인은 그 욕망의 21세기 버전일 뿐이다.

강을 등지고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난징루 南京路가 나온다. 중국 최초의 신작로. 중국인들은 10리里 대도라고 부른다. 전국에서 몰려든 인파가 도로를 가득 메운다. 상하이를 왔는데, 정작 이 길에 상하이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의 인구가 14억을 넘는다는 사실이 비로소 체감되는 순간이다. 건물마다, 골목마다 품고 있는 사연을 헤쳐보자. 이 거리는 단순한 쇼핑가나 보행가가 아니라 중국 근대화의 욕망이 처음으로 터진 자리다.

와이탄은 하루에 세 개의 얼굴을 가진 장소다. 아침이면 황푸강변에서 태극권의 느릿한 품새가 이어지고, 낮이면 난징루에 인파가 넘친다. 밤이 되면 푸동의 야경이 강면에 반사되며 아시아에서 가장 낭만적이라는 풍경이 완성된다. 그 낭만만을 소비하고 떠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강변의 건물 하나하나에 새겨진 시간의 결을 조금만 더 들여다본다면, 와이탄은 전혀 다른 장소로 다가온다.

무엇을 볼까